이곳에 이사온지도 어언 5년.
여름이 지나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새삼 아쉽고 정겹다.

큰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지하철 역까지도 10여분 이상이 걸리는 곳이다 보니
걷기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어느 곳이 새로 문을 열었고, 또한 어느 집은 문을 닫았으며, 이 집은 주인이
바뀌었구나 하는 것을 관찰하며 걷다 보면 깔딱고개의 힘겨움도 즐길 수 있게 된다.

[분식집 전성시대]

작년 여름에 새로 문을 연 학교 앞의 분식점은 환하고 깨끗한 가게에 예쁘고 상냥한 주인아주머니 덕에
남학생들에게 인기 폭발중.
순대에 섞어주시는 내장이 3종류나 되어서(간, 허파, 내장) 나도 좋아하는 곳이다...ㅎㅎ

탕수육이라는 간판을 걸어놓은 허름한 분식집.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가 운영하시는 이 집은 오래됐다는 연륜이 팍팍 풍기는
외관에 그다지 풍부하지 않은 메뉴로도 없어지지 않고 이 동네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

샌드위치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분식집은 잡채도 있고, 우동 종류도 있는
차별화된 메뉴에 나름대로 깔끔한 인테리어로 여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다.
그런것 치고는 장사가 잘 되지 않아보이는 것 같아서 오히려 불가사의한 곳.

아파트 단지 바로 앞의 조그만 분식점은 최근에 주인이 바뀌었다.
학교앞 분식점보다 순대 가격이 500원 저렴하지만 내장이 없어...
예전 주인 아주머니는 그래도 간을 섞어주셨었는데...ㅜ.ㅜ

야채 가게 옆 간이 분식집은 문을 닫았고, 그 외의 테이블 2개 정도씩의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오늘도 열심히 영업중.


[길거리 오뎅 전쟁]

즉석피자집 앞에서 어느날 부터인가 오뎅을 팔기 시작했다.
500원짜리 오뎅으로 길 가던 사람들을 붙잡으며 성업중이었는데 골목길 하나를 옆에 둔
문방구 앞에 새로 생긴 길거리 오뎅.

100원, 300원, 500원으로 종류를 다양화하고 봉지에 든 떡볶이 떡과 오뎅 판매를 겸하면서
갑자기 손님들을 확 끌어가버렸다.
추운 겨울 칼바람을 피할 수 있는 비닐 천막까지 둘러놓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인기 만점.

피자집 오뎅에서 내놓은 반격 수단은 Take out.
일반적으로 담아주는 비닐봉지가 아니라 즉석 포장기를 갖추고 튼튼한 플라스틱 용기에
새지 않게 밀봉해서 담아주고, 오뎅 종류도 다양화했다.

오늘도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있는 오뎅 가게 앞에는 뜨뜻한 국물 한 컵과
오뎅 꼬치를 들고 있는 아이들이, 엄마들이 추위를 녹이고 있다.


[음식점의 흥망성쇠]

'이런 곳에서 음식점이 될까' 싶은 곳에서도 음식점은 생겼다가 없어진다.

이 동네의 유명인사, '을밀대'
40년이 넘은 전통의 평양냉면 집으로, 여름날에는 밤 9시에 가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서울에서 냉면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와봤을거 같은 곳.
가까이에 있다는 잇점 때문에 입맛 없는 저녁이면 겉옷 하나 걸치고 나와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고갯길에 있는 해물포차.
비슷한 시기에 생긴 바로 옆집의 과일가게가 문을 닫았지만 꿋꿋하게 불을 밝히고 영업중이다.
새벽까지도 영업을 하기 떄문에 늦은 밤에 출출해지면 나올 수 있는 곳.

이대역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건너편에도 작은 횟집이 하나 있다.
묘하게 이 근방에 바닷 내음 나는 곳이 모여 있는데 유일하게 가봤던 정육점 위의
작은 횟집은 없어졌고, 이 곳은 내부에 고급 횟집 분위기가 나게 둥그런 카운터를
만들어 손님들이 앉을 수 있게 해두었다.

아파트 앞 과일가게 바로 옆에 3,300원짜리 삼겹살집은 여름날 저녁이면
고기 굽는 냄새와 매캐한 연기로 퇴근길을 유혹한다.
여름에는 냉방이 안되는 가게 앞 간이테이블까지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 성업중이었는데
오히려 겨울이 되니 한산해졌다.

이 집의 성공에 자극을 받았을까?
작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 저 아래쯤에 5,900원짜리 쇠고기 집이 생겼다...^^;

슈퍼 앞 고깃집은 영 테이블이 썰렁해 보이더니만 2주일쯤 전에 임대 표시가 나붙었고,
양쪽에 마주 자리잡은 곱창집 두 곳은 전통과 새로움으로 열심히 경쟁중이다.

저녁때는 야채를 파는 아저씨가 트럭을 끌고 와서 전을 벌리고,
한칸 짜리 싸전 앞에는 잡곡 포대가 입을 벌리고 있으며,
야채며 식료품들을 판매하는 가게들, 계란가게, 정육점, 과일가게들이 여기저기
벌려있어 장보는 아주머니들의 발길을 이끈다.

아주 고급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하고 편리한 우리 동네가 내년 이맘때 쯤이면 무척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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